현대 한국문학 속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내면적인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특히 배수아의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독창적인 문체와 고유한 정서로 대표되는 작품으로, 여성 작가 특유의 고요하고도 강력한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본 글에서는 『속삭임 우묵한 정원』을 중심으로 여성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적 특징들을 고찰하고,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작가들과 비교하며 그 고유한 가치에 대해 분석해 본다.
배수아 소설의 고유한 서사 구조
배수아의 소설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파편화된 이야기 흐름과 실험적인 문체로 독자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역시 이러한 특징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이 명확하지 않으며, 주인공의 내면 독백과 장면 전환이 비선형적으로 전개된다. 독자는 이 흐름 속에서 특정한 이야기의 ‘결말’을 찾기보다는, 인물의 정서와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배수아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할 때 감각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는 남성 작가의 전개 중심형 서사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내면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작가는 인물 간의 관계보다는 인물과 세계, 인물과 공간의 관계에 집중하며, 이 공간 역시 실재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속삭임 우묵한 정원』의 배경인 베를린은 이방인의 감정과 고립된 존재감을 강조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이해’보다는 ‘감각’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감정의 이동, 미묘한 눈빛, 날씨의 변화 등 시각적이지 않은 요소들로 서사를 구성하는 배수아의 스타일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여성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과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여성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나, 보다 주체적인 여성의 내면세계를 조명한다.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역시 여성 인물의 내면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은 외부 세계보다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기억, 감정, 상처에 집중한다. 이는 ‘말하기보다 느끼기’를 택한 배수아의 문체와 맞물려, 독자에게 명확하지 않지만 더 깊은 울림을 제공한다.
작품 속 화자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감정에 몰두하는 존재다. 그는 사회적 규범에 쉽게 편입되지 않으며,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는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을 보다 확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즉, 배수아의 여성 인물은 기존의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서술하는 ‘주체’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정체성 탐색은 한강, 김애란, 정이현 등의 다른 여성 작가들과도 일정 부분 유사하다. 예컨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사회적 틀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내면을 그려냈으며, 김애란의 『비행운』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배수아는 이들보다 훨씬 더 실험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내러티브보다 감각의 흐름에 집중함으로써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
문체 실험과 ‘여성적’이라는 개념의 재구성
『속삭임 우묵한 정원』에서 주목할 점은 ‘여성적 문체’에 대한 배수아의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여성 작가의 글쓰기라 하면 섬세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배수아의 문체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며, 때론 건조하고 파편적인 문장, 반복적인 어휘 사용, 시간의 왜곡 등을 통해 ‘여성적 서사’의 범위를 확장한다.
특히 그녀의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거나, 문맥상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결코 비논리적이거나 어색한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인식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이는 정형화된 문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문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배수아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서사의 틀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으로 문학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실험성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또한, 문학의 중심이 사건이나 메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감각에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전달한다.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여성 작가로서 배수아가 구축한 독창적 서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고정된 서사 구조를 넘어, 감각과 언어의 실험을 통해 여성 주체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한 이 작품은 현대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성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감각과 정체성의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